스마트시티와 합창의 닮은점

우리 대학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선배 교수님들의 정년퇴임식 자리에서 교수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학부시절 합창단이었다는 것을 아시는 교수님의 권유로 뒤늦게 합창단에 합류하게 된 터라 그것이 언제 어떻게 생긴 전통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두어 차례 공연에 참여해 보니, 퇴임을 맞으신 스승이자 선배 교수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일이라 생각됐다.

2019년 정년퇴임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교수합창단 연습 일정 공지도 함께 날아들었다. 내 일정표를 보니 개강 첫 주에다 여러 일들이 겹친 소위 ‘지옥 주간’이라, 연습 시간을 비우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시절 지도교수께서 정년퇴임을 맞으시는 자리라, 며칠간 일정 몇 개를 무리해 앞당겨 소화한 후 겨우 참석할 수 있었다.

실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연구에 밤낮이 없으면서도 공연 일정이 잡히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모이는 단원들. 좋은 소리를 기대하는 열정에 비해 연습 시간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하다. 짧은 준비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여 최대 효율을 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할까. 서로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파트별 가이드 음원을 들으며 혼자라도 틈틈이 익힌 후 연습에 임해야 한다.

혼자 연습할 때나 파트 연습에서는 언제나 뭔가 부족한 내 목소리가 언짢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든 파트가 모여 다 같이 한번 불러 보고 나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화음에 스스로 놀라 기분이 좋아진다. 각자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서 동그랗게 하나로 모아진 화음만이 지휘자의 지휘봉 끝자락을 따라 춤을 춘다.

학부 시절부터 합창 동아리 활동을 했으니 합창단 경력이 내 연구 경력보다 더 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취미로서 좋아하는 합창과 연구 분야로서 좋아하는 스마트시티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첫째, 당연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개개인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면 1+1은 2가 아니라 화음이라는 시너지가 더해져 그 이상이 된다. 셋째, 단원 개개인의 음악적 기교나 성량이 아니라 전체 소리의 어울림이 새로운 성공의 지표가 된다. 넷째, 청중의 입장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곡의 큰 그림을 보는 유능한 지휘자가 필요하다. 다섯째, 단원들은 자기 소리에만 열중해서는 안 되며, 옆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눈빛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여섯째, 그렇게 잘 만들어진 합창의 화음은 화려한 아리아보다 더 강하고 긴 여운을 단원들 모두와 청중의 가슴속에 남긴다.

스마트시티도 마찬가지다. 첫째, 인공지능, 블록체인, IoT, 빅데이터 등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영웅으로 떠오른 그 어느 기술도 단독으로는 스마트한 세상을 절대 만들 수 없다. 둘째, 이들 기술이 함께 활용되면 1+1은 2가 아니라 시너지가 더해져 그 이상이 된다. 셋째, 스마트시티의 성공 지표는 특정 기술의 우수성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와 그것이 가져올 시민 혜택에 있다. 넷째, 시민이 체감할 도시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보는 유능한 지휘자가 필요하다. 다섯째, 도시를 구성하는 제품과 서비스, 기술은 단독(Stand-alone)으로만 존재해서는 안되며,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뤄야 한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스마트시티여야만 그 구성원인 정부, 시민, 민간 기업 모두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다.

한주 간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한 탓에 좀 힘겨웠는지, 다음날은 코피로 하루를 열었다. 지혈하려 휴지를 코에 말아 넣으면서도 연신 합창곡 마지막 소절을 흥얼거린다. ‘오늘 이렇게 멋진 날에~’ 스마트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아침마다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게 되길 간절히 빈다.

포항공대 미래도시 연구센터 곽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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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3.04 20:15
  • 게재일 2019.03.05

포스텍-연세대 미래도시 분과 협력 포럼

지난 2월 8일과 12일 연세대 미래도시 분과 임윤묵 교수님께서 방문하셔서 1박 2일동안 미래도시 연구센터 교수님들과 세미나 및다양한 교류의 장을 가졌습니다.

  • 1회 미래 도시 연구 포럼 진행

목적: 포스텍연세대 미래도시 분야 연구 교류, 협력 과제 도출

일시: ’19.2.8~9  |  장소: 포스텍 미래도시연구센터

하루아침에 되는 스마트는 없다

얼마 전 스마트시티에 대한 기업인 대상 강의 때 일이다. 어느 분이 미세먼지 문제 좀 싹 해결해 주는 스마트 솔루션은 왜 아직 없냐고 가벼운 질타까지 느껴지는 질문을 하셨다. 우리가 스마트시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 드렸으니 그런 질문을 하실 법도 하다. 서정주 시인 말씀대로 국화꽃 한 송이를 제대로 피우기 위해서도 봄부터 울어줄 소쩍새와 먹구름 속 천둥이 필요한 것처럼, 스마트 기술을 통한 문제 해결 역시 단숨에 되는 것은 아니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업그레이드시켜 가야한다고 답변 드렸지만 그 순간 복잡한 심정이 됐다. 그 질문이 꼭 ‘미세먼지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느냐’는 핀잔처럼 들려 과학기술인을 대표해 사과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삼한사미’가 ‘삼한사온’을 대신하게 되었다니 시쳇말로 참 웃프다. 말만 들어도 벌벌 떨리게 맹위를 떨치던 한반도 터줏대감 동장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삼한사온은 한겨울 강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숨 돌리고 바깥 활동 좀 하라고 동장군이 통 큰 아량을 베푼 건데, 그 자리를 뜨내기 불청객 미세먼지가 떡하니 차지해 버렸으니 말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우리 일상에는 고민과 결정의 순간이 현저히 늘었다. 미세먼지가 무섭다고 실내 환기를 안 할 수도 없고, 답답한 집안 공기를 참아야할지 창문을 열어야할지, 또 언제 창문을 열면 그나마 덜 해로울지를 고민해야한다. 모처럼의 주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는 싫은데, 바깥나들이는 설레기보다는 망설여지는 일이 되어 버렸고, 언제, 어디로 가야 그나마 덜 해로울지를 고민하게 됐다. 그런 고민과 결정의 순간 사람들의 손에는 언제나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첫 화면에 받아둔 미세먼지 앱(App)을 습관처럼 열어보고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미세먼지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기 행동까지 결정하게 되었다. 스마트 기술은 사용자의 위치에 따라 보다 정확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그 수치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알려주는 일을 한다. 스마트의 단계 중에는 가장 기본적인 ‘초등’ 수준의 솔루션으로, 미세먼지 상태에 따라 사용자 스스로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돕는 전문 상담 창구 같은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초등 수준이 On-demand형의 수동적 솔루션이라면, 중등 수준은 그간 축적해 둔 사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행동들을 모니터링하면서 가벼운 조언을 해 주는 ‘측근’같은 역할이랄까. 출근길, 등굣길에 마스크가 꼭 필요하다고 알려주거나 가족 나들이는 실내가 좋겠다거나, 귀가 후 손과 눈을 씻으라든가, 쇼핑할 때는 미세먼지 줄임 효과가 큰 제품을 사도록 슬쩍 조언한다든가…. 문제는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 점이다. 오늘 처음 만난,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담 창구 직원이 어설프게 내 행동에 이런 저런 조언을 하려 드는 것을 상상해 보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릴 것이다. 스마트 기술이 소위 ‘듣보잡’잔소리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용자와의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사용자와 스마트기술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누군가를 측근으로 여기게 될 정도의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고 수준의 스마트 단계는 비유하자면 ‘도와줘요, 슈퍼맨!’을 외치면 ‘짠’ 하고 나타날 법한 문제 해결 영웅이다. 그 영웅은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도 사용자의 건강상태와 생활 패턴에 딱 맞춘 쾌적한 환경을 ‘알아서’ 설정해주고 미세먼지는 물론 에너지절약, 사용자의 편리와 비용절약까지 한 번에 다 잡아 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언젠가 우리 곁에 찾아올 진정한 문제 해결 영웅을 고대하며, 과학기술인들은 오늘도 국화꽃을 피워낼 소쩍새와 천둥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곽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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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게 진짜 스마트

이제 어리바리해서는 밥도 못 먹겠네….’ 얼마 전 집 근처 마트 식당가에서 주문 카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 대신 무인기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신 이모가 툭 한마디 하셨다. 공교롭게도 그 며칠 후 ‘무인계산대 시대, 무엇을 눌러야할지 몰라 쩔쩔매는 노인들’, ‘무인 주문·계산기 들여놓자 발길 끊은 60대 단골들’ 등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액티브 시니어. 요즘 웬만한 60·70대 어른들은 ‘노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아 새로 쓰게 된 말이다. 은퇴 후에도 적극적인 소비와 취미, 여가 생활을 즐기며, 최신 상품들을 젊은이들보다 더 빨리 사서 써보는 ‘얼리어답터’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액티브 시니어를 신소비층으로 주목하며 시니어 특화 상품과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요즘 들어 어느 분야에서나 ‘사람 중심’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어 반갑다. 그러나 정작 그 ‘사람 중심’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함께 얘기해 주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함정이랄까. 사용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은 그 제품을 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찬찬히 살피고 그들의 필요를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마트에 식사하러 오는 대세 고객들은 누구인지,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불편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고민하다 보면 기계 앞에서 진땀을 빼게 하는 가짜 스마트가 아니라 만족스러워 다시 오고 싶게 하는 사람 중심의 진짜 스마트의 아이디어가 보상처럼 주어진다.

마트 식당가에서는 임시방편으로 무인 기계 옆에 주문을 도와 줄 사람을 보조로 세워뒀다. 하지만 애초에 사용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 잘못 만든 인터페이스가 문제였기 때문에 이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익숙해질 것이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한번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된 사용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기왕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있는데 그 앞에서 조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처럼 한참을 뭔가 찾아다니며 몇 단계를 눌러 들어가야 주문할 수 있게 만든 것이 과연 정답이었을까? 차라리 사진앨범처럼 식당가의 모든 메뉴 사진을 한 화면에 쭉 나열해 두고 선택하게 했다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음식 견본 진열대 앞에 간단한 QR코드나 태그(Tag)를 붙여두고 카페 진동벨이나 스마트폰 스캔으로 바로 주문이 된다면 무인기계 앞에서 진땀 흘리며 메뉴를 고르느라 대기 줄이 길어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는 단골손님은 굳이 무인기계 앞에 줄 서지 않고 자리에 편하게 앉아 ‘지난번과 같은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지금이라도 사용자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서 사용자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의 중심이 사람에서 멀어지면 무인계산대처럼 소위 ‘솔루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람들이 제대로 쓰지도 못할 기기와 서비스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없이 대충 만들어진 어설픈 ‘솔루션’들은 세상에 쓰레기를 투척하고 악취를 뿜어내는 공해유발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어설픈 스마트의 사례들이 하나 둘 쓰레기처럼 쌓여 스마트 전체에 대한 불신과 외면을 부를 것이다.

스마트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실감할 수 있는,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진짜’ 스마트가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나에게 세상을 구하기 위한 딱 1시간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데 55분의 시간을 쓰고, 해결책을 찾는 데 나머지 5분을 쓸 것이다’라고 한 아인슈타인 박사의 맞장구가 그래서 든든하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곽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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