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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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개강 준비를 마치고 연구실에서 나서는 길, 주차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캠퍼스를 잠시 거닐었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잠깐 쐬면서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스트레스를 좀 달래볼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모처럼 햇살이 좋아서 소독이라도 하려는 듯 온몸에 받았다. 하늘과 잔디밭도 푸르게 빛나 눈이 부셨다. 어느 새 봄이 온 모양이었다. 우연히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면 못 알아차릴 뻔했다.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길이 가르마 같다는 생각이 들자 학창시절 즐겨 외우던 시구가 떠올랐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기분이 좀 풀린 듯한 느낌도 잠시, 기억을 되감아 그 시의 첫 구절을 읊조리고는 이내 울컥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흉포한 바이러스의 침략으로 한 달 넘게 지척의 부모님, 가족들과도 화상통화만 하던 설운 내 마음속으로, 빼앗긴 조국의 들에서 피눈물로 그 시를 썼을 시인의 마음이 훅하고 빨려 들어와, 백년의 시간을 넘어 절묘한 공명을 일으켰다. 새해 들며 슬며시 쳐들어와 저 들을, 거리를 텅 비워버린 바이러스는, 우리에게서 2020년의 첫 두어 달을 ‘순삭’시킨 후 이제 봄까지 빼앗으려 넘보고 있으니, 그 시절 무도한 침략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옷자락을 흔드는 바람,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는 종다리,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 민들레, 제비꽃, 부드러운 흙….

봄이 온 기쁨을 만끽할 수조차 없었던 시인은 빼앗긴 들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고맙고 따스한 것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푸른 웃음 푸른 설움으로 뒤범벅된 그 심란한 마음을 달랬으리라.

시인의 봄 신령이 옮겨 지폈는지, 평소라면 IT기술과 AI로 코로나와 전쟁에 뛰어든 기업들의 이야기만 찾았을 공학자도 인터넷을 뒤져 불안만 키우는 뉴스들 속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담들을 찾아내며 기뻐한다.

전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의료진들, 보호구 자국을 얼굴에 훈장처럼 새긴 거인 같은 그들의 미소, 개점휴업 중인 식당의 식재료를 소진해 주고 의료진의 식사를 챙겨 보내는 사람들, 침침한 눈으로 손수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어르신들, 앞 다투어 이어지는 기부행렬, 포항의 드라이브 스루 횟집, 이탈리아의 발코니 음악회, 노인을 비롯해 건강에 취약한 이들이 편안하게 생필품을 살 수 있도록 1시간 먼저 문을 열기로 한 착한 상점들….

우리의 그런 노력들이 어우러져 마음까지 얼려버릴 듯한 팬데믹의 시대를 훈훈하게 덥혀 줄 것이다.

그래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의문문은 머지않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구나!’라는 감탄문으로 바뀔 것을 믿는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스마트 세상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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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칼럼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를 썼을 때만해도 상황이 달랐다. 이웃나라 상황을 강 건너 불로 여기지 말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비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쓴 삼인칭 관찰자 시점의 글이었다. 반짝 관심이 쏠렸다가 상황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일이 잦으니, 이번에는 그러지 말자는 노파심이 시킨 글말이다.

최근 불과 1주 사이 좋아지는 듯 보였던 상황은 급변했다. 매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백수십명씩 늘고, 일상을 함께하던 사람들 중에도 격리 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공장소는 문을 닫았고 거리는 무인지경에다 아파트 주차장은 며칠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차들로 가득하다. 행사, 회의는 물론 사적인 모임들까지 취소되었다. 막연한 불안감을 넘어 실제로 닥친 위기, 매일 악몽 속에서 잠이 깨는 공포영화 느낌이랄까.

대학원에서 안전공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한 후 안전문제에 관한한 과민반응을 보이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 목숨이 달린 안전문제를 비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해주어서다.

며칠 연속 확진자가 나오지 않자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의학계의 엄중한 경고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지만 거리에는 마스크를 벗어던진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사람들의 불안심리가 유발할 사회·경제적 부작용이 바이러스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너무 빨리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될까 공학자는 불안했다. 치사율이 낮다고는 하나 전염력이 이전에 찾아온 그 어떤 병원체들보다 강하고, 게다가 폐렴을 일으킨다지 않는가?

안전공학 이론 중에 리즌(James Reason)의 스위스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이란 것이 있다. 구멍이 숭숭 난 스위스 치즈 조각을 여러 겹 겹친 것을 예로 들면서, 모든 형태의 사고는 그 여러 겹의 구멍 사이를 용케도 빠져나가버린 화살 같은 거라 설명한다. 그 여러 겹의 치즈는 대비책이 될 만한 사회적 안전망, 위험을 막아줄 조직체계와 제도, 의·약학적 치료제, 그리고 보완수단이 될 기술적 안전장치 등을 말한다. 바이러스 따위에게 들통나버린 스마트 세상의 구멍들을 매워나갈 궁리에 서둘러 해결해내야 할 숙제는 늘어만 간다.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져 쓰레기나 버리자며 챙겨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쓰레기 버리는 엄마를 따라 킥보드를 끌고 나온 동네 꼬마와 마주쳤다. 여느 때라면 친한 척하며 담소를 한참 나누었을 텐데, 마스크 너머로 눈웃음만 건네는 게 전부라 씁쓸하다.

“아…. 오랜만에 밖에 나온다….”

아파트 마당으로 나서며 혼잣말하는 꼬마가 짠해 한참을 보고 서 있었다. 이번 사태로 입학이 연기된 조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이 시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이 몰려와 다음에는 이런 일 다시없게 해주마 다짐해 본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스마트기술의 새로운 용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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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송된 모녀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7살의 어린 나이에 혈액 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딸 나연이와 엄마가 가상현실(VR)기술의 도움으로 만나게 되는 내용이었다.

한 줄짜리 프로그램 요약과 짤막한 예고편 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목이 메었다. 본방송은 차마 보지 못하고 며칠 지난 후에야 찾아보았다. 본방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방송사 유튜브(Youtube) 채널 영상의 조회 수가 800만에 육박했다고 하니, 많이들 비슷한 마음이었나 보다.

비판의 글도 보였다. 사람들의 감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거나, 남은 자녀들에게 너무 가혹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나연이 엄마의 블로그는 너무 많은 관심이 쏠려 비공개로 돌렸다고 한다.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 쏟아낸 댓글에도 적잖이 시달렸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짤막한 영상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은, 누구에게나 대상이 다를 뿐 꿈에서라도 좋으니 얼굴 한번 봤으면 싶은 사람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꼭 삶과 죽음이 아니더라도 공간적 거리나 다른 여러 이유들로 만날 수 없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 말이다.

주변에서 빨리 잊으라고 닦달해도,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존재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좋았던 기억은 희미해져서 사진 속에만 남고, 오히려 내가 했던 나쁜 말과 행동, 못해준 것, 꼭 그런 것들만 오래 생각난다. 잊었다 싶다가도 생활 속 사물들이 문득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가족에게는 외할머니가 그런 존재이다. 돌아가신지 삼십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 그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부터 글썽거린다.

골목길, 철 대문, 석류나무 한그루만 봐도 할머니 생각이 나서 운다. 대문을 ‘딸랑’하고 열어젖히고 ‘할머니’하고 부르면, 맨발로 석류나무 앞까지 달려 나와 구수한 안동 사투리로 “엄머이 싸암들아~”하며 맞아 주시던 외갓집 앞마당의 기억 때문이다.

길 가다 지구본을 봐도 목이 메어 온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기 1주일 전 마지막 뵈었을 때였다. 다 낡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이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하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을 보고, 아르바이트해서 하나 사드리려 마음먹었던 지구본을 끝내 못 사드렸기 때문이다.

한번만 더 생전의 고운 모습으로 움직이고 말하시는 할머니를 뵙고, “그때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지구본 하나 사 드리려고 했는데 못해 드려서 아쉬워요”라고 한마디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를 모셔둔 산소에 가더라도 모습을 뵐 수는 없으니, 가상세계 속에서라도 한번만 만나고 싶다는 나연이 엄마의 마음이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아…. 한번만 만져봤으면 좋겠어….”라며 흐느끼던 나연이 엄마 얘기가 머리에 남아, 훌쩍이면서도 책을 뒤적여 가상 촉감 구현 기술에 대해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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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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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가 나타났다. 전자현미경 없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이 자기보다 몇 천 만 배 더 큰 인간들을 상대로 맹위를 떨친다. 첨단의 21세기에 아직 치료제는커녕 정확한 감염경로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들. 스스로 이동 능력조차 없는 그들은 인류가 만든 교통수단에 무임승차하여 대륙을 넘나들며 팬대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다.

2016년 국민 안전체감도 조사 결과, 자연재해, 교통사고, 시설물 붕괴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신종전염병이 체감위험도 1위를 차지했었다. 사스(SARS), 신종플루, 메르스(MERS) 등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들이 2~3년에 한번 꼴로 창궐한 직후였으니, 신종전염병이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 건 당연했다. 뼈아팠던 메르스의 교훈 이후 의료계는 병원 내 2차 감염을 방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응급의료체계와 병문안문화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2019년에는 위험도 1위가 환경오염으로 바뀌고 전염병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 관심이 미세먼지로 옮아간 사이, 바이러스는 조용히 변이를 거듭해 더 독하고 강해져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바이러스 패닉이 시작되고 보니, 지난번 소를 잃었을 때 쏠렸던 범국민적 관심에 비해서는 외양간 고치기가 너무 기본적인 정비에만 그친 것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무엇보다 역학조사를 개인 기억이나 설문조사, 의료기록, 신용카드 결제 이력 등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지만,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될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마련해 뒀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 상업 목적의 스마트 디바이스 데이터가 유사시에 제대로 활용만 되었더라도 지역사회를 지키는 안전망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의료진과 관련기관으로 개인의 건강·의료 기록, 여행·방문이력 등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즉시 일괄 제공하거나, 접촉자의 수와 소재 파악 등 역학조사 전 과정에 스마트 기술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하므로, 개인 데이터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해둘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공격은 호흡기를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불확실성 하에서의 막연한 공포심과 그로 인한 폐쇄적 태도를 유발하여, 마치 생태계를 파괴한 인류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정치와 경제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일부 확진 환자가 자유롭게 지역사회 활동을 했다고 하면 불안감이 더 커지니 나라 문을 닫아걸자는 여론으로까지 번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혹시 나도?’하고 막연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과민하다 탓할 수만은 없다. 미세먼지 앱처럼 오늘 내가 다닐 경로는 안전할 거라는 ‘좋음’ 표시 같은 거라도 하나 있었다면 사람들 마음이 좀 놓이지 않았을까.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3.0과 4.0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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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티 연구를 하다 보니 소위 ‘4차 산업혁명 관련 내용’으로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더러 받게 된다. 학생, 기업, 공무원, 일반 시민 등 강의 대상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청중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4차산업혁명이나 스마트시대는 자동화 시대의 연속이거나 아직 막연히 먼 미래 아닌가요? 얼마 전까지도 이제 곧 모든 게 자동화될 거라며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주변을 보면 갈 길이 멀지 않은가요?”

떠들썩했던 3.0 시대의 등장을 기억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앞세운 3.0의 시대는 마치 폭주하는 마법사처럼 ‘자동화’의 마술지팡이를 휘두르며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변화시켜버릴 기세로 우리 삶 속으로 날아 들어왔었다. 산업, 시장, 리더십, 조직, 일자리, 웹, 미디어 등 우리에게 익숙했던 거의 모든 것들에 유행처럼 3.0이라는 숫자가 붙었다. 신기하게도 3.0이라 불리게 된 순간, 마법에라도 걸린 듯, 그 이전의 것들은 일제히 낡고 무능해 보이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이 이끈 산업혁명의 시대를 1.0으로, 조립생산 라인이 가져온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2.0으로, 누가 봐도 오래된 것임이 명백하도록 선을 딱 그어 놓은 다음 주인공처럼 마지막에 등장했으니 그럴 만 했다.

그러나 3.0시대가 불러온 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강력한 컴퓨팅 파워에 힘입은 자동화의 물결은 산업현장에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 결과, 제품을 만들면 팔리는 공급자가 ‘갑’인 시대는 끝났고, 시장에서는 기업들 간의 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이나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시장, 혹은 단순한 소비의 주체로만 바라보던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무모함을 반성하게 되었고, 이제 사용자를 이성과 감성, 취향과 영혼을 가진 전인적 존재로 인식하고 ‘고객’이라 칭하며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3.0시대로의 변화가 아직 미치지 못한 산업 분야도 적지 않은데, 이미 세상은 4.0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하니, 3.0과 4.0의 차이가 ‘허상’으로 느껴질 만도 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3.0과 4.0은 순차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 효능이 다른 ‘마술지팡이’로 봐야 한다. 3.0시대의 마술지팡이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할 자동화 대상을 찾아내는 데 주로 쓰였다면, 4.0시대 마술지팡이의 효능은 연결성과 지능화의 대상을 찾아 사람이 하는 일을 돕는데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를 무리하게 추진하여 생태계 내의 저항이나 마찰을 야기하는 ‘자동화의 늪’에 빠져 실패하는 기업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동차 업계는 미래차의 전략적 방향성을 무인차가 아닌 자율주행차로 조정하여 운전자 탑승여부가 아니라 연결성과 지능화를 통해 차량이 스스로 판단하고 주행하는 기술에 집중함으로써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자신의 분야가 지금 비슷한 난관에 부딪혀 있다면 서둘러 마술지팡이를 바꿔 드는 것을 권하고 싶다. 3.0시대의 지팡이를 과감히 버리고 4.0시대의 지팡이로 갈아탄다면 더 쉽고 확실한 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스마트세상은 누가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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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의 브리스톨이라는 도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회의장소인 브리스톨 대학으로 이동하는 중 택시기사님께 인사치레로 ‘브리스톨은 참 흥미로운 도시 같다’고 한마디 건네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브리스톨은 지금 런던을 능가하는 혁신적인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브리스톨의 혁신을 위해 시의회와 브리스톨 대학이 시민들과 함께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기사님의 이야기는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십 수분 간 길게 이어졌다. 브리스톨 시의회와 브리스톨 대학이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스마트화 노력에 대한 기사님의 해박한 지식과 자긍심은 그저 우연이라기에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혹시 브리스톨 대학 관계자가 아닌지 묻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계시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많이 들으니까요. 게다가 곳곳에서 도시 혁신을 위한 활동들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지요….” 기사님의 당연하다는 듯한 답변에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스마트시티의 성공 비결은 시민 참여를 통해 도출된 일상 속 해법이라는 점이다.’ 여느 보고서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이 구절은 이번 영국 방문을 계기로 우리에게 새로운 발견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인들에게 스마트시티란 국가나 지자체가 ‘알아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들에게 스마트시티는 이제 구성원들이 직접 나서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도시 혁신활동 그 자체로 시민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 그것을 택시기사님의 증언을 통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인에게 있어 과학기술은 그 역사를 자신들이 이끌어 왔다는 특별한 자긍심의 대상인 동시에,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대하는 대중문화의 일부’라는 요지의 논설을 읽은 것이 떠올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술에 대한 그들의 시각과 태도 역시 무관하지 않다.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로 이용 가능한 영국. 그들에게 예술은 높은 곳에 걸어 두거나 유리 상자 안에 고이 모셔두고 멀찍이서 감상하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다. 바로 가까이에서, 언제고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일상 속에 녹아든 생활 그 자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과학기술과 예술을 일상생활 그 자체로 만들어 버린 그들이기에,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누군가 일방적으로 창조하도록 허용하지도, 유리상자 속 전시용 스마트 세상이 되게 내버려두고 뒤로 물러나 있지도 않았다. 스마트 세상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손수 한번 만들어 보겠다며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이다.

소위 ‘엄친아’와 비교 당하는 언짢은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서나마 우리 지역 시민들께도 슬쩍 한 번 부추겨 보고 싶다. 우리 모두가 실생활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진짜 스마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이다.

포항공과대학교 미래도시연구센터 곽지영 교수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35207

스마트 세상, 컵케이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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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IT 리더 기업들의 신제품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10, 11, 버전 숫자가 두 자릿수까지 올라가면서, ‘혁신’ 그 자체보다는 자연스러운 진화와 가성비를 통한 저변 확대에 방점을 두는 기업들. 발표회가 채 끝나기도 전, 리뷰어들은 ‘혁신은 없었다’, ‘특별함은 없었다’ 등의 싸늘한 반응들을 약속이나 한 듯 쏟아낸다.

IT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에 기술 수용 주기(Technology Adoption Lifecycle)라는 것이 있다.

혁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시간차를 두고 확산돼 가는 것을 그래프로 표현하면 볼록한 종 모양의 곡선이 된다는 마케팅 이론으로, 제안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로저스의 종(Rogers’ Bell Curve)으로도 불린다.

이 ‘로저스의 종’에는 캐즘(Chasm)이라는 작은 ‘틈’이 있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제품이 출시 초기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시장 반응을 보이지만, 그 후 수요가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후퇴하는 단절현상을 말한다. 호기심이 발동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에 관심을 보이며 무조건 구매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용성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구매를 시작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바로 이 ‘틈’에서 IT 업계 리더 기업들의 딜레마가 생긴다. 소위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의 주목과 호응을 얻으려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혁신적인 제품을 남보다 먼저 내놓아야 한다. 경쟁자보다 한발 늦으면 초기 시장에서의 입지를 빼앗긴다는 위기감에, ‘실용성’은커녕, 사용자의 기대치를 살필 겨를도 없이 쫓기듯 제품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다. ‘실용’을 원하는 대다수 사용자의 마음을 제대로 못 읽고 결국 대중화에 실패하게 되는 ‘캐즘’. 출시가 늦어져 혁신에 실패하는 경우나, 서둘러 제품을 내놓느라 대다수의 기대치를 제대로 충족 못한 두 경우 모두, 제품개발 과정의 막대한 투자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기업은 혁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선택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후 IT업계가 터득한 것이 바로 ‘린(Lean=군더더기 없이 가벼운)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 내놓고 싶은 제품이 화려한 3단 웨딩 케이크라고 하자. 청사진은 3단 웨딩 케이크를 멋지게 그려 두되, 파티셰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컵케이크’부터 만들어(Make), 먼저 손님들의 반응을 확인해보고(Check), 아니다 싶을 때는 보완책을 모색하여 고치는 것(Think)이 린 접근법의 핵심이다.

스마트 세상을 만드는 일은 비유하자면 3단 웨딩 케이크 만큼이나 복잡하고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 컵케이크부터 차근차근 키워 나가는 IT업계의 린 접근법이 스마트 세상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포스텍 미래도시 연구센터 곽지영 교수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26536

도시의 영웅 탄생을 방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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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경찰, 군인, 구급요원, 응급의료 종사자 등등. 공공의 안전과 시민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자기 몸을 던져 위험을 상대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 언론은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벌어진 그들의 영웅담을 생생하게 전하고, 우리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린다.

매번 그런 데자뷰 같은 반복을 접하는 필자의 감정은 이내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사명감으로 빛나는 제복 뒤에 가려져 미처 못 볼 수 있겠으나 그들은 우리 부모이고, 형제자매이고, 귀한 자식들이다. 국가와 도시 시스템이 취약하여 우리 가족인 그들을 자꾸만 순직하는 ‘도시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

물론 국가 차원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토부는 2022년까지 전국 80개 이상 지자체에 스마트시티 통합 플랫폼과 도시 안전망 서비스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마트시티 통합 플랫폼은 관내 CCTV 영상, 교통, 기상, 시설물 정보 등 도시의 안전 상황을 한곳에서 모니터링하고 시청, 소방서, 경찰의 현장 대응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경북에서도 올해 구축이 완료된 포항과 경산을 시작으로, 2019년 새로 선정된 구미를 비롯해 김천, 영천, 안동, 울릉 등 여러 지자체가 다음 차례를 준비하고 있다. 통합플랫폼과 도시 안전망 서비스가 스마트시티 구현의 근간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치와 비교할 때 아직 첫 걸음마를 내딛은 정도에 불과하다. 예측불허, 위험천만인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지켜내는 일을 믿고 맡기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첨단의 정의를 갱신해가는 통신, 가전제품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비교할 때, 공공안전 분야의 스마트화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반성해야할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미래의 도시, 스마트시티 구축에서 우리가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할 분야가 바로 안전이라 믿는다. 도시의 바람직한 미래에는 기술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위험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람들은 절대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

일반 가정을 비롯한 도시의 모든 건물에는 위험감지와 자기방어를 위한 지능형 장치가 마련되고, 유사시 그 장치의 모니터링과 제어가 원격으로도 가능하게 서로 연결된다. 집집마다 설치된 화재경보기와 소화기는 이제 상황을 스스로 감지해 자율적으로 동작하고 중앙 시스템에 상황을 알릴 줄도 아는 ‘스마트’ 버전으로 바뀐다.

재난현장의 소방관은 스마트 안전장치로 철저하게 보호받는다. 각종 센서를 통해 수집된 현장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혼합현실 장치를 통해 구조자의 위치와 안전한 이동 루트 등 현장 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으며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상황실에서는 소방관들의 실시간 위치와 그들의 생체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며 만약의 위험상황에 2중, 3중으로 대비한다. 그 꿈속 도시는 스마트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인 연결성과 지능화를 통해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도록 변모하여 시민들과 안전요원 모두를 위한 진정한 안전망이 된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이제 더 이상 도시 영웅의 희생에 슬퍼하고 미안해할 일은 없다.

포항공대 미래도시 연구센터 곽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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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티와 합창의 닮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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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선배 교수님들의 정년퇴임식 자리에서 교수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학부시절 합창단이었다는 것을 아시는 교수님의 권유로 뒤늦게 합창단에 합류하게 된 터라 그것이 언제 어떻게 생긴 전통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두어 차례 공연에 참여해 보니, 퇴임을 맞으신 스승이자 선배 교수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일이라 생각됐다.

2019년 정년퇴임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교수합창단 연습 일정 공지도 함께 날아들었다. 내 일정표를 보니 개강 첫 주에다 여러 일들이 겹친 소위 ‘지옥 주간’이라, 연습 시간을 비우는 것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시절 지도교수께서 정년퇴임을 맞으시는 자리라, 며칠간 일정 몇 개를 무리해 앞당겨 소화한 후 겨우 참석할 수 있었다.

실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연구에 밤낮이 없으면서도 공연 일정이 잡히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모이는 단원들. 좋은 소리를 기대하는 열정에 비해 연습 시간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하다. 짧은 준비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여 최대 효율을 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할까. 서로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파트별 가이드 음원을 들으며 혼자라도 틈틈이 익힌 후 연습에 임해야 한다.

혼자 연습할 때나 파트 연습에서는 언제나 뭔가 부족한 내 목소리가 언짢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든 파트가 모여 다 같이 한번 불러 보고 나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화음에 스스로 놀라 기분이 좋아진다. 각자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서 동그랗게 하나로 모아진 화음만이 지휘자의 지휘봉 끝자락을 따라 춤을 춘다.

학부 시절부터 합창 동아리 활동을 했으니 합창단 경력이 내 연구 경력보다 더 길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취미로서 좋아하는 합창과 연구 분야로서 좋아하는 스마트시티 사이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첫째, 당연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개개인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면 1+1은 2가 아니라 화음이라는 시너지가 더해져 그 이상이 된다. 셋째, 단원 개개인의 음악적 기교나 성량이 아니라 전체 소리의 어울림이 새로운 성공의 지표가 된다. 넷째, 청중의 입장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곡의 큰 그림을 보는 유능한 지휘자가 필요하다. 다섯째, 단원들은 자기 소리에만 열중해서는 안 되며, 옆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눈빛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여섯째, 그렇게 잘 만들어진 합창의 화음은 화려한 아리아보다 더 강하고 긴 여운을 단원들 모두와 청중의 가슴속에 남긴다.

스마트시티도 마찬가지다. 첫째, 인공지능, 블록체인, IoT, 빅데이터 등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영웅으로 떠오른 그 어느 기술도 단독으로는 스마트한 세상을 절대 만들 수 없다. 둘째, 이들 기술이 함께 활용되면 1+1은 2가 아니라 시너지가 더해져 그 이상이 된다. 셋째, 스마트시티의 성공 지표는 특정 기술의 우수성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와 그것이 가져올 시민 혜택에 있다. 넷째, 시민이 체감할 도시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그림을 보는 유능한 지휘자가 필요하다. 다섯째, 도시를 구성하는 제품과 서비스, 기술은 단독(Stand-alone)으로만 존재해서는 안되며,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뤄야 한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스마트시티여야만 그 구성원인 정부, 시민, 민간 기업 모두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다.

한주 간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한 탓에 좀 힘겨웠는지, 다음날은 코피로 하루를 열었다. 지혈하려 휴지를 코에 말아 넣으면서도 연신 합창곡 마지막 소절을 흥얼거린다. ‘오늘 이렇게 멋진 날에~’ 스마트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아침마다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게 되길 간절히 빈다.

포항공대 미래도시 연구센터 곽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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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3.04 20:15
  • 게재일 2019.03.05

하루아침에 되는 스마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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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마트시티에 대한 기업인 대상 강의 때 일이다. 어느 분이 미세먼지 문제 좀 싹 해결해 주는 스마트 솔루션은 왜 아직 없냐고 가벼운 질타까지 느껴지는 질문을 하셨다. 우리가 스마트시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 드렸으니 그런 질문을 하실 법도 하다. 서정주 시인 말씀대로 국화꽃 한 송이를 제대로 피우기 위해서도 봄부터 울어줄 소쩍새와 먹구름 속 천둥이 필요한 것처럼, 스마트 기술을 통한 문제 해결 역시 단숨에 되는 것은 아니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업그레이드시켜 가야한다고 답변 드렸지만 그 순간 복잡한 심정이 됐다. 그 질문이 꼭 ‘미세먼지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느냐’는 핀잔처럼 들려 과학기술인을 대표해 사과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삼한사미’가 ‘삼한사온’을 대신하게 되었다니 시쳇말로 참 웃프다. 말만 들어도 벌벌 떨리게 맹위를 떨치던 한반도 터줏대감 동장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삼한사온은 한겨울 강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숨 돌리고 바깥 활동 좀 하라고 동장군이 통 큰 아량을 베푼 건데, 그 자리를 뜨내기 불청객 미세먼지가 떡하니 차지해 버렸으니 말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우리 일상에는 고민과 결정의 순간이 현저히 늘었다. 미세먼지가 무섭다고 실내 환기를 안 할 수도 없고, 답답한 집안 공기를 참아야할지 창문을 열어야할지, 또 언제 창문을 열면 그나마 덜 해로울지를 고민해야한다. 모처럼의 주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는 싫은데, 바깥나들이는 설레기보다는 망설여지는 일이 되어 버렸고, 언제, 어디로 가야 그나마 덜 해로울지를 고민하게 됐다. 그런 고민과 결정의 순간 사람들의 손에는 언제나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첫 화면에 받아둔 미세먼지 앱(App)을 습관처럼 열어보고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미세먼지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기 행동까지 결정하게 되었다. 스마트 기술은 사용자의 위치에 따라 보다 정확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그 수치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알려주는 일을 한다. 스마트의 단계 중에는 가장 기본적인 ‘초등’ 수준의 솔루션으로, 미세먼지 상태에 따라 사용자 스스로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돕는 전문 상담 창구 같은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초등 수준이 On-demand형의 수동적 솔루션이라면, 중등 수준은 그간 축적해 둔 사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행동들을 모니터링하면서 가벼운 조언을 해 주는 ‘측근’같은 역할이랄까. 출근길, 등굣길에 마스크가 꼭 필요하다고 알려주거나 가족 나들이는 실내가 좋겠다거나, 귀가 후 손과 눈을 씻으라든가, 쇼핑할 때는 미세먼지 줄임 효과가 큰 제품을 사도록 슬쩍 조언한다든가…. 문제는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 점이다. 오늘 처음 만난,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담 창구 직원이 어설프게 내 행동에 이런 저런 조언을 하려 드는 것을 상상해 보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릴 것이다. 스마트 기술이 소위 ‘듣보잡’잔소리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용자와의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사용자와 스마트기술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누군가를 측근으로 여기게 될 정도의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고 수준의 스마트 단계는 비유하자면 ‘도와줘요, 슈퍼맨!’을 외치면 ‘짠’ 하고 나타날 법한 문제 해결 영웅이다. 그 영웅은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도 사용자의 건강상태와 생활 패턴에 딱 맞춘 쾌적한 환경을 ‘알아서’ 설정해주고 미세먼지는 물론 에너지절약, 사용자의 편리와 비용절약까지 한 번에 다 잡아 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언젠가 우리 곁에 찾아올 진정한 문제 해결 영웅을 고대하며, 과학기술인들은 오늘도 국화꽃을 피워낼 소쩍새와 천둥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곽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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